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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불명 연예소설 02편

관리자 2019.08.12 14:49 조회 수 : 6

여느 여자들 같으면 금방 기억에서 지워질텐데 오늘 미술학원에서 본 아가씨는 잠들 때까지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만큼 예쁜 여자를 못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내 나가면 연예인 뺨치는 아가씨들이 참 많지요. 몇 마디 말이 오고 가서 그럴까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동생이 불을 켜놓고 책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형만 방이 따로 있고 전 동생하고 같은 방을 쓰고 있지요. 학과 공부하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기말고사가 일, 이주 있으면 치러지겠군요. 아직 저도 학생이죠 참. 너무 직업 정신이 투철했는지 자주 학생인 사실을 까먹습니다. 그냥 철가방인 줄 알아요.
      "형아야. 자냐?"
      "아니. 외에?"
      "너, 나하고 사귈래가 좋냐? 그대 곁에 언제나 내가 있고 싶다가 좋냐?"
      이불 속에 있는 나에게 동생이 한 질문은 좀 황당했습니다.
      "너 지금 뭐하는데 그런 질문을 하냐? 무슨 레포트 쓰냐?"
      "연애 편지 쓴다 왜. 뭐가 좋냐?"
      "뭐! 누구랑 사귀는데? 이 녀석 신기하다."
      놀랍군요. 이불을 걷고 벌떡 앉았습니다. 의자를 뒤로 한채 동생이 나를 보며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애가 있어. 뭐가 좋냐니까?"
      "니가 할 수 있는 걸로 해 임마. 여자 옆에 가서 그대 곁에 언제나 내가 있고 싶다, 이러고 싶냐?"
      "편지에 쓸 내용이라니까."
      "물어볼 놈한테 물어봐라. 잠이나 자 임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동생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하기야 저놈은 영 아니지."
      "뭐 새꺄?"
      동생이 혼자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작게 말했지만 방은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형이 그랬잖아 뭐. 생각해 보니 여자가 형 찾는 전화 한 적은 한 번도, 내가 이성에 눈뜨고 나서 한 번도 없었더라."
      "놀리지마. 있었어."
      정말 있었어요. 우리과 그녀라 말하기 어색한 그녀가 당구치자고 몇 번 전화한 적이 있었는데... 동생은 난 놈입니다. 우리 형제 중 유일하게 여자를 사귀나 봅니다. 형은 자기는 의사라 뭐 중매 잘 들어올텐데 연애는 왜하냐, 하며 뒷짐지고 방에서 맨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형도 여자가 귀한 동네서만 살았어요. 이런 형들을 배신하고 동생이 여자를 사귈려나 봅니다. 오늘 미술학원에서 본 그 아가씨를 내가 데리고 온다면 동생도 형도 나자빠지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오늘 본 그녀는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바쁜 점심때가 조금 한가해졌습니다. 시계는 오후 세시를 머금고 울려하고 있습니다. 금방 배달 갔다온 칠구녀석과 중국집 문 앞에 앉아 담배를 폈습니다. 거기서도 들리는 주인 아줌마의 낭랑한 목소리...
      "강군아. 미술 짱개다."
      크. 그 미술 원장아줌마는 꼭 쉴려고하면 주문을 합니다. 그냥 점심때면 다른 곳 배달하면서 같이 할 수도 있는데 짱개 하나 때문에 또 나의 애마를 굴려야 하겠습니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문을 열자 주인아줌마도 씩 웃습니다.
      "오늘은 두개다."
      왜 짱개가 두갤까? 하나로는 모자랐나요? 조그마한 체구의 원장아줌마가 생각보다 배가 큰가요? 곱빼기는 모르나? 하기야 곱빼기는 보통보다 맛이 없습니다. 같은 양의 짜장에 면만 많으니 당연히 맛이 떨어지죠.

      철가방이 오늘은 다른 날보다 묵직합니다. 더운 날 사층까지 뛰어올라갔습니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집니다.
      "식사 왔습니다."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굳어 버렸습니다. 테이블 소파에는 어제 본 아가씨가 마치 날 기다린 양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괜한 생각은 몸에 해롭죠?
      "배달의 청년. 짜장 꺼내야죠? 테이블에 놓아주세요."
      몇 초 서 있지도 않았는데 원장 아줌마 배가 고팠나요. 책상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꺼냅니다. 다른 날보다 조금 서툴게 그릇을 내어놓았습니다. 테이블 유리 밑으로 아가씨의 모은 다리가 길게 뻗어 있습니다.
      원장 아줌마가 계산을 하려고 했는데 그 아가씨가 가로챘습니다.
      "아니에요. 언니. 제가 계산할게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얼마예요?"
      "네? 고...곱하기인데요."
      그녀가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거니까 당황히 되었습니다. 그녀도 당황히 되었는지 "네?" 그러네요.
      원장 아줌마가 웃습니다.
      "6000원. 내가 매일 하나만 시켜 먹으니까 불만인가 보다."
      그녀의 손에는 빳빳한 천원짜리 지폐 여섯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았습니다.

      오또바이를 타고 돌아오며 그녀 생각을 해 봅니다. 더운 날씨에 눈앞에 날리는 내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곱네요. 별것에도 다 감상적이 됩니다. 내 벨트지갑에는 그녀가 준 천원짜리 지폐가 들어 있습니다. 곧 주인 아줌마에게로 가겠지요. 그리고 이름없는 천원짜리가 되어 뿔뿔히 흩어 질 것입니다. 가여운 그녀의 천원짜리. 오또바이를 세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천원짜리랑 바꿔치기하고 다시 오또바이를 몰았습니다.
      찾으러 간 그릇은 학원 현관 앞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 싶지만 그냥 돌아 왔습니다.

      하루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밤은 호떡처럼 둥근 달과 핫도그 짝대기처럼 가는 가로등으로 밝습니다. 먹을 것을 생각하니 배가 고프네요. 그녀의 천원짜리 여섯장을 제외한 나머지 천원짜리 한장으로 근처 리어카에서 핫도그 하나 사 먹었습니다. 핫도그카 옆에는 장미를 떨이로 파는 일톤 트럭이 서 있습니다. '천원에 두개라...' 저 다분히 감성적이라고 그랬죠. 지갑을 보니 그녀가 준 천원짜리 여섯장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포기해야겠습니다.
      '천원짜리는 그녀가 주었다.'
      걸어가다 도로 돌아와 빳빳한 천원짜리로 장미 두송이를 샀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꽃을 사주었다.'
      혼자 너무 청승을 떠나요.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즐겁습니다.

      내 방에 누웠습니다. 동생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꽃은 간혹 동생이 재떨이로 이용하는 자그만 화병에다 꽂으려 했습니다. 꽃이 없으면 불쌍히 재떨이로 변해버리는 내 화병에는 팔팔 라이트 꽁초가 집단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이 새끼를 업어치기 해버려? 힘이 부치겠네요. 화병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꽃 두송이가 이 방을 참 은은하게 비추어 줍니다.
      천원짜리는 간혹 쓰는 내 일기장에다 꽂았습니다. 모아 볼 생각입니다. 얼마까지 모을지 의문은 들지만 그 돈이 쌓이는 만큼 그녀의 기억에 내 모습이 쌓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 두 구석이 즐겁습니다.
      피곤하니 잠이 들어 버릴만도 하지만 동생이 없는 방에 내 마음이 즐겁습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오늘 미술실 그녀의 말에는 내일도 그 미술실에 온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푸하하. 동생은 그런 나를 방해하며 들어 왔습니다. 나를 보자 바로 나가 버리네요.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들어온 동생은 화려한 장미 다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거 뭐냐?"
      "선물 받은 거지."
      "누구한테?"
      "오늘부터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다."
      "어제 편지 쓴 애?"
      "그래."
      동생은 참 의기양양합니다. 철모르는 동학년 여학생 하나가 눈이 삐었나 봅니다. 어떻게 예비역을 좋아하냐. 동생이 다니는 과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다고 합니다. 좋겠다. 참 잘생긴 우리 형도 꺼이꺼이하고 그냥 잘생긴 나도 청승을 부리고 있는데 별로인 막내는 의기양양합니다. 
      "너 좋아한대?"
      "그럼."
      "뭐라 그랬는데?"
      "너 나랑 사귈래? 니 곁에 내가 있으면 좋잖아. 멋있지?"
      "진짜 그렇게 말했냐?"
      "응."
      "너 주워 온 자식 맞구나. 어쩐지 별로 배가 부르지도 않은 엄마가 애하나 덜렁 들고 올 때부터 이상하더니..."
      "너랑 나랑 한살 차이다. 하여튼 꽃 이쁘지?"
      비싼 장미였습니다. 떨이로 파는 오백원짜리 장미가 아니었습니다. 자그만 화병에 꽂힌 그녀가 사준 장미 두송이가 초라해 보입니다. 꽃이 시들 때쯤 사귀기로 한 여자애가 다시 사 줄거라고 말하는 동생이 얄밉습니다. 같이 들고 온 커다란 화병에 동생이 그 꽃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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