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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불명 연예소설 04편

관리자 2019.08.12 14:50 조회 수 : 6

      날이 개었습니다. 어둑한 방에 햇빛이 들어와 두송이 장미에게 안깁니다. 오늘은 집에 있을 겁니다. 이주에 한번씩 찾아오는 중국집의 휴일입니다. 동생은 베개를 껴앉고 웃음을 머금은 채 잠들어 있습니다. 다음주가 시험이라는 녀석이 참 태평합니다.
      책상 위 동생의 삐삐가 울렸습니다.
      "0404 1004,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레이져 시켜 버렸습니다. 시계의 큰 바늘은 육과 포옹하고 있었고 큰 바늘에 밀린 작은 바늘은 칠로 가고 있습니다.
      내 가슴 속 여자가 아침을 설레이게 했습니다. 오늘 하루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을텐데 말입니다.
      오전내내 집에 있다가 뭔가 생각이 나 집을 나섰습니다. 다림씨가 준 지폐와 동전이 지금 내 호주머니에 있습니다. 비록 떨이로 파는 장미지만 예쁘네요. 팔천 오백원어치 장미를 샀습니다. 열 여덟 송이입니다. 한 송이는 그냥 끼워 주더군요. 예쁜 포장지로 감싸지 못한 열 여섯 송이를 몰래 미술학원 앞에다 놓고 왔습니다. 그 시간이 두시 가까이 되었을 겁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그 꽃은 분명 다림씨에게 안기겠지요. 두송이는 이젠 시들어 가는 내 화병의 장미 옆에다 꽂았습니다. 몇송이 더 들어가면 화병이 비좁겠습니다.

      짱개 배달의 하루는 다시 시작 되었고 힘든 고비를 넘겼습니다. 오늘 미술학원에선 짬뽕 한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날씨는 맑았습니다.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 다림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장 아줌마가 어제 내가 놓아둔 장미를 들고 쉼호흡하고 있습니다. 분명 내가 놓아둔 장미인 걸 알겠습니다. 열 여섯 송이고 포장이 또한 초라합니다. 김 새내요. 그건 아줌마 것이 아니에요. 하기야 노처녀가 꽃을 받으면 저렇게 좋아 할 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사모하여 갖다 놓았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겠지요. 착각도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 혼자 즐거워 하세요.
      중국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녀석은 배달 나갔나 봅니다. 썰렁한 홀에서 잠이 들었어요. 날씨는 더웠고 선풍기 바람이 좋았습니다. 주인 아줌마가 이런 날 깨우지 않았습니다. 삽십분 정도 조는 듯 잤습니다. 슬 저녁을 위한 주문이 시작될 때가 되어 갑니다.
      "강군아 미술 그릇 찾아 와야지."

      이제는 다림씨가 학원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릇을 밖에 내 놓았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됩니다. 계단을 후다닥 뛰어 올라 갔습니다. 다행히 그릇이 나와 있지 않군요.
      "그릇..."
      많이 감격했습니다. 이건 분명 다림씨와 제가 인연이 있을거란 암시를 해주는 대목입니다. 맞아요. 분명 그녀와 인연이 있을겁니다. 모델과 철가방은 한복과 장미처럼 다소 어색하지만 말입니다.
      치마의 빨강이 가슴을 타고 올라와 있는 모습입니다. 치마색깔은 초록의 저고리에서 장미모양으로 빛이 났습니다. 다림씨가 내가 준 장미를 안고 있습니다. 안어울리 듯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총각!"
      "저 말입니까?"
      "배달의 청년이 듣기 싫다며?"
      "총각도 별론데요. 그냥 원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원이씨."
      "왜요 원장 샘."
      "한복에 장미 꽃이 어울려 보여? 그냥 한복만 입은 여인으로 그릴까?"
      "꼭 장미를 그려주세요."
      무표정의 그녀가 눈동자를 굴려 이쪽을 한 번 쳐다 보았습니다. 참 희한하다 느꼈을 겁니다. 자기를 이렇게 앉혀두고 철가방이 뭘 알겠다고 물어보는 이 원장아줌마가 신기할 겁니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맺힌게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로 열흘 정도 미술학원에서 주문이 없었습니다. 저 밑 사거리에 생긴 북경 반점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혹시 입맛을 바꾼거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 안되는데... 날씨는 더욱 뜨거워지고 답답한 가슴으로 배달이 짜증이 났습니다. 오늘은 더군다나 일요일입니다.
      "강군아. 미술 짱개 둘이다."
      정오를 갓 넘긴 시간에 들린 주인 아줌마의 그 소리가 더운 여름 날 소낙비처럼 내 답답한 마음을 씻어 주었지요.
      오또바이야 달려라. 설레는 날 싣고 말이다.
      하늘을 나는 마음으로 숨이 가픈지도 모르고 사층을 단숨에 뛰어 올라 갔습니다.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 휴지통에 버려져 있는 시든 장미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장미들은 그림속 다림씨의 모습속에 아주 신선하게 안겨 있었습니다. 그림은 거의 완성 단계였습니다. 아직 캔버스가 이젤 위에 놓여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저렇게 그냥 팔아도 될것 같습니다. 내가 살까요?
      "식사 왔습니다."
      "들어와요."
      원장실 안에서 원장아줌마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림씨의 향기가 납니다. 있을 겁니다.
      다림씨는 한복차림이었으나 머리는 풀어 있었습니다. 땀으로 젖은 몇줄기 머리 가닥이 그녀의 얼굴에 묻어 있습니다. 그 모습이 화살이 되어 내 심장을 또 찌르는군요.
      "며칠 못 봤죠?"
      "네."
      짱개 그릇을 내 놓으며 원장 아줌마의 말에 답을 했습니다.
      "딴데 시켜 먹어 봤는데 역시 총각 집이 제일 맛있더라구."
      이 아줌마가 진짜로 입맛을 바꾸려고 했군요. 나쁜 아줌마네.
      "총각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참. 뭐라 부르기로 했더라."
      이런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다림씨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때 원이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냥 고개만 끄덕거려 주었습니다. 날뛰는 마음을 붙잡아야 했기에 표정없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그녀 앞에 짱개 그릇을 꺼내 놓으며 말입니다. 손은 왜이리 떠는 거야.
      "맛있게 드세요."
      돈도 못 받고 그냥 나왔습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고 해야겠지요.

      그릇을 가지러 갔을 때 다림씨는 아까와는 다른 옷차림, 나에게 자기의 첫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언니 저 가볼께요."
      참 시간 잘 맞추어 왔군요. 원장아줌마는 다림씨가 그려진 그림앞에서 명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몇일은 더 나와야 할거야."
      "그래요. 내일 봐요."
      그릇을 후다닥 챙겼습니다.
      "돈 받아 가세요."
      다림씨가 저에게 말까지 걸었습니다. 이렇게 황송할 때가...
      "네?"
      "언니가 돈 안줄거래요. 돈 꺼내는데 그냥 나가 버렸다구."
      다림씨는 이 말을 속삭이 듯 해주고 현관을 나갔습니다. 살 열 받네요. 원장 아줌마 들뜬 날 이용해 먹을려고 했단 말입니까. 괘씸하게 느껴지는군요. 짱개 하나 팔아 얼마나 남는다고...
      "원장 아줌마. 돈 주세요."
      "어머! 이 총각 봐. 이봐요 배달의 아저씨. 나 아줌마 아니야."
      제가 실수하고 말았네요.
      "죄송해요 원장 누나. 돈 주세요."
      몇 마디 대화가 오고가고 했습니다. 결국은 웃었지만 한차례 원장아줌마의 표정엔 살기가 돌았습니다. 겨우 돈을 받아 오또바이로 왔습니다. 다림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걷고 있었군요. 꺽어진 대로를 따라 오또바이를 몰고 있는데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고 있는 다림씨를 보았습니다. 팔이 예전보다 많이 탓군요. 그 버스 정류장 앞에 오또바이를 세웠습니다. 아는체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몇 보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조금 더 보기 위해 철가방을 바로 세우는 척 했습니다. 그런데 다림씨가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저...저기요."
      "저 말인가요?"
      "에... 사...삼선짜장도 맛있어요."
      "네?"
      "빠라빠라 바라밤."
      왜 바보같이 말을 걸어가지고 이런 낭패를 봅니까. 저기요,하고 나서 내 머리속은 온통 하얗게 변해 버리더이다. 눈 앞은 깜깜해지고 말입니다. 다림씨가 날 쳐다보니까.
      뭘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나머지 잡고 있던 헨들의 경적 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앞에 말한 것도 영 찜찜합니다.
      둘러쓴 모자를 바로 하고 철가방아 날 살려라 도망치려 했습니다. 오또바이가 시동이 꺼졌네요.
      "바랑. 빠라빠라 바라밤."
      시동은 안걸리고 경적은 울려되고... 그녀가 아주 멀뚱한 표정으로 절 보고 섰습니다. 아주 멍한 표정입니다. 치마가 조금 바람에 날렸습니다. 너무 당황이 되는군요. 나도 모르게 그녀를 보고 씩 웃었습니다.
      그녀가 하얀 이를 보였습니다. 코위는 그대로인 채 나의 모습을 흉내라도 내듯 이빨을 보이며 그녀도 씩 웃었습니다.

      쪽팔림과 동시에 그녀의 웃음 때문에 오늘 밤은 많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왜 나는 여자 앞에서는 당황하는걸까. 다림씨 앞에서는 너무나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오늘처럼 뒷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런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 내 친동생인지 많이 의심이 가는 민이한테 배워야겠습니다.
      "침착해.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잃지마."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하지만 이게 정답이겠죠.

      오늘도 배달은 시작되었고 오또바이로 철가방을 운반하고 있습니다. 배달을 갔다오니 주방에서 그릇을 랩으로 싸시며 아줌마가 말씀하셨어요.
      "강군아 미술 배달이다. 짱개하나에 삼짜 하나다."
      삼선짜장? 다림씨가 내 말을 듣고 삼선짜장을 시키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며 오또바이를 몰았습니다.
      오늘은 한창 바쁜 한시경이었습니다. 다른 곳의 음식도 함께 넣어 달렸지요. 탕수육 하나가 미술학원의 짱개들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미술 학원에서 학생 둘이 내려옵니다. 학원이 맞긴 맞나 봅니다. 지금까지 수강원들을 보지 못했기에 긴가 민가 했는데 학원생들이 있었군요. 아마 그림은 시간을 따로 내어 그렸던 것 같습니다.

      원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원장아줌마와 다림씨가 있습니다. 정다운 모습입니다.
      "식사 왔습니다."
      다림씨는 컴 앞에서 리셋키만 누르고 있었습니다.
      "언니. 컴퓨터 맛 갔다."
      "올해 샀는데."
      "식사 왔다니까요."
      나를 무시하는군요. 지네들끼리 이야기 하길래 다시 식사 왔다는 말을 해야 했습니다.
      "삼선짜장 누구에요?"
      "저요."
      다림씨가 먼저 꺼내 놓은 젓가락을 손에 쥐고는 들어 보였습니다. 참 귀여운 구석이 많네요.
      "왜 난 안 물어봐?"
      이 아줌마가 진짜.
      "야 탕수육이다."
      다림씨가 철가방 속을 보았나 봅니다. 같이 들고 온 탕수육을 보더니 귀여운 아이처럼 말했습니다. 짜장면을 꺼내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어제보다 많이 어려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눈망울이 오늘은 더 커 보입니다. 까짓것...
      "이 탕수육은 보너스에요. 드세요."
      원장 아줌마 다림씨 둘 다 멀뚱멀뚱 저를 쳐다 봅니다. 원장 아줌마가 물었습니다.
      "삼선짜장 시키면 탕수육 보너스로 주나요?"
      이 아줌마 진짜 바본가.
      "아니요."
      "삼선짜장이 얼마에요?"
      탕수육은 대짜였습니다. 엄청 푸짐했습니다. 분명 둘이서는 다 못 먹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꺼내 놓았는데... 다림씨가 삼선짜장의 가격을 물어 보았습니다. 탕수육을 물끄러미 쳐다 보며 말입니다.
      "5000원이요."
      다림씨가 계속 탕수육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천원짜리 다섯장을 주었습니다. 원장 아줌마는 또 만원짜리 군요. 다림씨에게 받은 오천원은 내 주머니에 넣고 벨트지갑에서 잔돈 칠천원을 원장 아줌마 한테 주었습니다.
      "이 탕수육만 시켜 먹으면 얼마에요?"
      원장아줌마가 물었습니다. 다림씨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 눈동자를 세워 저를 쳐다봅니다.
      "이만원이요."
      자꾸 물을까봐 일어서 나왔습니다. 나가다가 문득 내가 전자공학과 학생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까 컴퓨터 얘기를 들었고 내가 컴퓨터에 대해서는 좀 안다는 사실도 기억이 났습니다. 원장실 문을 열다가 뒤돌아 섰습니다.
      "저기요?"
      탕수육 고기를 집어 올리다 놀라 떨어뜨리는 두 여자를 보았습니다. 고기가 떨어져 나간 젓가락을 들고 날 쳐다보는 다림씨가 깨물고 싶을 정도로 귀엽습니다.
      "네?"
      또 떨려 오는군요. 침착하자. 침착하자 주원아.
      "커...컴푸터가 잘 안되요?"
      "난 잘 모르겠는데 여기 다림이가 맛이 갔다고 말하네."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안 켜지길래. 친구거랑 좀 틀리길래 말한거에요."
      뭔가 책임지지 못할 말을 했다가 발뺌하는 듯한 어투입니다. 다림씨의 표정이 또 귀엽네요.
      "한 번 볼까요?"
      대충보니 시간이 걸릴 것도 같습니다.
      "오늘은 안 되겠고 내일 한번 봐 드릴까요?"
      "총각 컴푸터 잘 알아?"
      "제 전공이 전자 공학이에요. 제 컴은 제가 조립하고 프로그램도 다 제가 깔았는걸요."
      "학생이세요?"
      다림씨가 나에게 질문을 하는군요.
      "휴학생이에요."
      "총각 진짜로 한 번 봐줄 수 있어?"
      "뭐 단골이니까. 내일 중국집 노는 날이거든요. 봐줄 수 있어요."
      "총각 진짜 고맙다. 탕수육도 서비스로 주고 컴까지 고쳐 줄거야?"
      "자꾸 총각 하지 마세요."
      "그래 미안. 그럼 내일 언제 올거야?"
      다림씨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혹시 테트리스라는 게임 있어요?"
      그 표정을 읽은 듯 다림씨가 말했습니다. 98년도에도 테트리스하는 사람은 있었군요.
      "물론 있지요. 그럼 내일 저분 있을 때 올까요?"
      난 입을 삐죽이 내밀어 다림씨를 가리켰습니다.
      "테트리스가 뭐냐?"
      "게임인데 정말 재밌어."
      아무래도 저 둘 굉장히 컴맹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럼 이맘때 쯤에 와."
      내일은 다림씨를 좀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 마음은 날고 오또바이는 그런 내마음을 싣고 달립니다. 중국집 가서 주인 아줌마한테 졸라 욕들어 먹었습니다. 탕수육 값은 제가 치뤄야 했구요. 그래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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