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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불명 연예소설 05편

관리자 2019.08.12 14:51 조회 수 : 7

      휴일이 이렇게 설레였던 적은 아마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습니다. 낮에 티비방영도 없는 휴일이지만 이 들뜬 마음을 붙잡기에는 내 힘이 너무 약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험 끝나 뒤비져 자고 있는 동생 배 한 번 때려보고 아침 준비하시는 엄마한테 달려가 실실 쪼개도 보고 어딜 나가시는지 일찍 일어나 계시는 아버지께 신문도 갖다 드렸습니다. 형한테는 차마 못가겠군요. 불쌍한 놈이라.
      약속 시간 몇 시간 전에 이미 전 나갈 채비를 마쳤습니다. 옷차림도 신경을 좀 썼구요. 머리도 단정히 무스 발라 넘기고 혹시나해서 은행에서 돈도 10만원이나 찾아 놓았습니다. 26살 사내의 마음은 진정이 되질 않았습니다.

      디스켓 한장을 들고 학원으로 향합니다. 날씨는 덥지만 너무나 화창합니다.
      학원 현관앞에 섰습니다. 되도록 천천한 걸음으로 올라왔습니다. 침착하기 위해서죠. 호흡을 가다듬고 노크를 했습니다.
      "들어와요."
      오늘 원장아줌마와 다림씨는 원장실이 아닌 학원 본실에 있었습니다. 완성된 그림을 앞에 놓고 말입니다.
      "어. 배달의 총... 원이씨 정말 왔네요."
      그럼 오라고 했으면서 씨.
      "오늘은 제법 쌈박한데."
      우리집 세형제 중에 두번째로 잘 생긴 사람입니다. 그건 우리 엄마가 정한 것이지요. 내가 볼때는 내가 제일 잘 났어요. 다림씨도 그림을 보며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그림 잘 그린거 같아?"
      뭐 실물 보다는 못하지만 원장아줌마가 그림은 잘 그리네요.
      "예."
      "오늘 완성했어."
      뭐 저번에 봤을 때와 별로 다른 것도 없는데, 오늘 완성했다고 그럽니다.
      "오늘 점심은 뭐 먹냐? 다림이 넌 뭐 먹을래?"
      다림씨가 저를 쳐다 봅니다. 어색한 가요?
      "뭐. 별로 생각없어요."
      "점심은 먹어야지. 배달의 총각이 여기 있으니 중국 음식은 안 되겠고 그때 시켜 먹었던 아임에프식 피자나 시켜 먹을까? 원이씨 피자 좋아해요?"
      북경 반점은 아니었군요. 다림씨와 절 며칠간 못 보게 했던 건 아임에프였군요.
      "저야 뭐."
      "그래 언니. 그거나 시켜 먹어요."
      "그러지 뭐. 컴퓨터 고치는 데 시간 많이 걸려?"
      원장 아줌마가 일어섰습니다. 켄버스를 들고 조심스럽게 벽장에다 넣더니 날 인도하듯 원장실로 들어 갔습니다.
      "한 번 봐주세요. 정말 고장 났어요?"
      원장아줌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나는 그 눈을 받아 다림씨를 쳐다 보았고, 다림씨는 내 눈을 피해 원장아줌마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켰는데 분명히 이상이 있었어요. 그 있잖아요 컴퓨터 키면 뜨는 화면이요. 제 친구꺼는 그게 떴는데, 그리고 소리도 났는데 언니 것은 안 그랬단 말이에요?"
      뭐 죄 지었습니까? 다림씨가 약간 흥분 된 어조로 말했습니다.
      "무슨 화면이요?"
      오히려 제 음성은 차분했습니다. 다림씨가 저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컴퓨터 켜면 뜨는... 그걸 뭐라 그러더라, 하늘색 있잖아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듯한 다림씨의 눈망울이 깜찍하네요.
      "윈도95 화면이요?"
      "맞아요. 그거."
      "빌 게이츠. 나 그 사람 아는데."
      원장 아줌마 갑자기 빌 게이츠는 왜 나와요. 유식을 자랑하고 싶었나 봅니다. 참 무식하게도 말입니다.
      여자 둘을 내 옆으로 세워 둔 채 컴 앞에 앉았습니다. 그 기분 괜찮네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모니터를 보았습니다.
      "아예 부팅이 안되는군요."
      "그게 뭐에요?"
      다림씨가 물어 보는데 대답 안 할 수가 없었죠.
      "컴퓨터에 꼭 필요한 거에요. 부팅이 있어야 아까 말한 그 화면이 떠요."
      "그거 비싼가? 왜 그게 없대?"
      원장선생님 너무 무식을 자랑하지 마세요. 다림씨도 막상막하네요.
      "제가 고장낸거 아니죠?"
      "예 다림씨는 잘못이 없어요."
      컴퓨터를 왜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컴퓨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요. 단지 너무 컴퓨터를 오랫동안 켜지 않아서 CMOS의 밧데리가 나가 있었습니다. 자주 사용해야 충전이 되는데 몇 달간 컴퓨터를 켜지 않았나 봅니다. 하드 드라이버가 인식이 되어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팅이 되지를 않은 거였습니다.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쉽게 고칠 수가 있었지만 다림씨가 옆에 있습니다. 시간을 끌어야죠. 뒤돌아 봤을 때 원장아줌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다림씨도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모니터나 컴퓨터를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총각 내 이름은 알어?"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근데 다림이 이름은 어떻게 알아서 불러?"
      제가 다림씨 이름을 불렀나요. 하하. 저 원장아줌마가 이런 학원 차렸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저렇게 덜 떨어진 머리로 말입니다.
      "언니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니까 알았겠죠 뭐."
      "네."
      "총각은 이름이 뭐야? 그냥 원이야?"
      이 아줌마가 저를 넘볼려고 하는 것입니까? 수상쩍습니다.
      "강 주원인데요."
      "그래? 난 이현자구 얜 손다림이야."
      아줌마 이름은 안가르쳐 주어도 되요. 그래도 원장 아줌마 덕에 통성명을 했습니다.
      "주원씨는 몇 살이야?"
      "저요? 26살인데요."
      "생각보다 많네. 나보다 다섯살 밖에는 적지 않다 야."
      아줌마 진짜 수상적네요. 감히 삼십대가 이십대를 넘보려고 하다니... 원장아줌마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림씨를 쳐다 보았습니다.
      "전 24살이에요."
      잘 가르쳐 주네요. 오늘 내 옆에 철가방도 없는게 그녀가 가까이 다가와 있는 느낌입니다. 다시 원장아줌마에게로 시선을 주며 물었습니다.
      "컴퓨터 뜯어봐도돼요?"
      "뜯어 봐? 뜯어봐도 고장 안나나?"
      "그럼요. 드라이버 좀 갖다 주세요."
      컴퓨터 케이스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옆에 서 있던 두 여자들이 신기한 듯이 고개를 숙여 컴퓨터 내부를 봅니다. 컴퓨터 안 여러 카드들에 먼지가 수북히 앉아 있습니다. 전 그냥 카드를 분리해 먼지만 닦아 내었는데 그것이 그들의 눈에는 아주 수준 높은 행동으로 보였나 봅니다.
      "진짜 컴퓨터 잘 아나 보다."
      "뭘요."
      "대학생이야?"
      "네."
      "근데 철가방은 왜 들고 다녀?"
      "아르바이트 하는 거에요."
      "아 고학생인가 보구나."
      "아닌데요."
      "어디 대학 다니는 거야?"
      "여기서 제일 가까운 데 있는 대학이요."
      이렇게 원장 아줌마에게 말해도 다림씨가 다 듣겠죠. 대답하는게 즐겁습니다. 카드들을 이리 저리 돌려 보며 꽂힌 칩들을 만지작거리기도 했습니다. 원장 아줌마가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커피 먹을래?"
      "주시면 먹죠."
      "다림이도 한잔 할래?"
      "네."
      컴퓨터 뚜겅을 닫고 파워버튼을 눌렀습니다. CMOS를 맞추고 부팅을 시켰습니다. 윈도95화면이 뜹니다.
      "야 떴다."
      다림씨가 소리쳤습니다. 옆에는 다림씨만이 서 있었습니다. 원장아줌마는 커피 끓이러 갔어요. 내가 돌아보자 소리쳤던게 어색했던지 입을 쭝긋 한 번 내밀고는 보조개를 띄우네요.
      "됐죠?"
      "네."
      "참 테트리스 깔아 드릴께요."
      "그거 있어요?"
      "네."
      난 디스켓을 꺼내 다림씨에게 흔들어 보여 주었죠. 다림씨는 그건 보지도 않고 모니터 화면만 주시하고 있네요.
      테트리스를 복사하고 친절히 아이콘을 배경에다 꺼내어 주었습니다.
      "이것만 누르면 실행이 되요. 해 보실래요?"
      "네."
      전 자리를 비켜 주었습니다. 다림씨가 예쁜 손으로 금방까지 내가 만졌던 키보드 한 쪽을 누르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자 커피 끓여 왔어. 어! 다 고쳤네."
      다림씨는 게임에 빠져 있습니다. 끝이나야 오겠네요. 전 소파에 앉았습니다.
      "고마워요."
      "뭘요."
      "피자 시켰거든요. 먹고 가요. 알았죠."
      "네."
      "앞으로 그냥 누나라 불러요. 계속 그곳에 배달 시켜 먹을테니까."
      "감사합니다."
      다림씨는 내가 커피의 잔을 반정도 비웠을때 테이블 소파로 왔습니다. 놀랍네요. 윈도를 종료시키는 법은 알고 있었습니다.
      "고장 났나봐요."
      "왜요?"
      "그냥 꺼져 버려요."
      "아. 그건 ATX 방식이라서 그래요."
      멀뚱히 날 쳐다보는 그녈 보았습니다. 다림씨에게는 어려운 말이었겠죠?
      "게임 좋아 하시나 봐요."
      "네. 언니 테트리스 해 봐요. 재밌어요."
      내 질문을 원장아줌마에게로 옮겨 버립니다.
      "할 줄 알아야 하지."
      "이 분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요."
      "네? 하하. 게임 좋아하시면 몇 개 더 깔아 드릴까요?"
      "언니 컴퓨터에요?"
      "네."
      "저 내일부터 여기 안나올거에요. 언니한테 물어보세요."
      지금까지 참 부드럽게 이어지던 내 말투는 다시 버벅거려졌습니다. 오늘 다림씨의 태도에 자신감이 생겼었어요. 꼭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처럼도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녀는, 다시 그녀라 해야겠군요. 그녀는 나의 그런 마음을 여지없이 뭉게버리는 말을 참 태연히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말했습니다.
      "내..내일은 여...여기 안 계실거에요?"
      "네. 오늘로 작업이 끝이 났거든요."
      커피가 갑자기 씁니다. 원장아줌마가 내 표정을 알리가 없죠.
      "아임에프식 피자 치고는 맛이 괜찮더라 그치?"
      "응. 언니."
      "조금 늦네."

      피자는 내가 아무런 말 없이 몇 분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도착했습니다. 인연은 생각보다 쉽게 이어지지는 않는가 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더니 틀린 말이군요. 그녀가 여기 없다면 만날 도리가 없겠지요. 그 동안 참 설레였는데... 용기를 내어 전화번호라도 물어 볼까 생각을 해 봅니다만,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피자를 앞에 놓고 평상시처럼 재잘거리는 저 두 여자를 보니까 접어둬야겠습니다. 하기야 이 정도 가지고 사람 사귈 수 있다면 누가 못 사귀겠습니까. 저런 미인은 나에게는 맞지가 않죠.
      "주원씨는 피자 안좋아 해? 맛이 없어?"
      피자 한조각을 들고 너무 시간을 지체했었나 봅니다. 여섯 조각난 피자는 한 조각만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아직 난 몇입 먹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다림씨가 눈치를 살피더니 그 남은 한조각을 가져 갑니다. 보기 보단 많이 먹는 여잔가 봅니다. 아까는 생각이 없다고 그래놓구선. 내가 먹는 모습을 쳐다 보니까 또 깜직한 표정을 지어주는 군요. 너무 자주 짓지는 마세요. 그 표정이 나같은 녀석을 착각하게 만드니까...
      "전 그...그만 가볼게요."
      "왜. 좀 더 놀다가지."
      "야...약속이 있어요."
      "그래? 좀 더 놀다가 다림이랑 같이 가면 될텐데."
      "됐어요. 재밌게 노세요. 저 가볼게요."
      다림씨는 피자가 없어져 아쉬웠는지 빈 피자박스를 내려다 봅니다. 인연이 있으면 어쩌다 길가다가 만날 수는 있겠죠. 두 여자가 일어섰지만 현관까지는 원장아줌마만 나왔어요. 그녀는 원장실에 있구요. 터벅 터벅 내려오는 계단이 참 길게도 느껴집니다. 함부로 설레이지 맙시다. 지나고나면 진짜 쪽팔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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