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is.net

출처불명 연애소설 15편

관리자 2019.08.12 14:58 조회 수 : 4

      사진은 모두 석장이었지요. 그 책의 여느 다른 사진들과 별반 다를게 없지만 그 석장은 내 사랑의 모습입니다. 저 놈들이 저렇게 웃으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그림처럼 풋풋한 그리움의 색깔이 아닌 성(性)적 빛이 나는 그 사진은 첫번째는 수영복 차림이었고 두번째는 손으로 가렸으나 나는 아직 그 모습을 기대하지 못한 서러운 그녀의 가슴이 반 이상 드러낸 것이며 세번째는 돌아섰으나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습니다. 수줍은 듯 피하는 시선이 아니라 유혹하는 뇌쇄적인 눈빛의 그녀는 내가 어제까지 보아온 다림이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왜 저걸 찍었을까,하는 생각은 그녀를 보며 웃는 녀석들의 모습이 너무나 싫기에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에게 기억되어 있는 다림이의 모습을 애써 상기시켜 보지만 또한 저렇게 이상한 눈빛으로 웃고 있는 저 놈들의 모습이 그 것을 퇴색시켜 버립니다. 다림이가 찍은 사진들보다 수많은 남정네들의 손에서, 눈에서, 입에서 싫은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화나게 합니다. 나에게는 여전히 너무나 곱고 순수하고 귀여운 다림이는 지금 초라하게 희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끼워 넣고 싶지않던 내 사랑은 싫은 웃음소리가 군데 군데 들어와 금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싫습니다.

      "헤헤. 넘겨봐 임마."
      "이 여자 진짜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그 여자가 나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들킬가봐 두렵습니다. 동윤이와 용준씨가 보고 있는 잡지에게로 달려가 "북!" 다림이가 있는 그 페이지를 찢어 버렸습니다.
      "야. 강 주원! 지금 뭐하는 짓이야?"
      대답을 할 필요가 없지요. 하기도 싫습니다.
      "나 간다. 이딴 거 보지마 새꺄."
      하룻밤 자고 가려고 했던 나는 찢어 낸 그녀의 사진을 들고 일어 섰습니다. 다소 화가 난 표정의 동윤이는 나에게 이제 더 이상 그 표정을 유지하지 못하고서는 실실 또 웃습니다. 내 모습은 자기보다 훨씬 무섭게 화가 난 표정임을 읽었나 봅니다.
      "에이 그래. 선심 썼다. 너 가져."
      나는 지 애인에게 저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놈의 그녀에게 저렇게 싫은 웃음 짓지 않았습니다. 네 놈의 애인 사진을 저 용준이에게 던져 주며 '너 해라.' 그러면 너는 화가 나겠지?
      발로 한 대 찼습니다. 표정이 굳어진 동윤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저 놈보다 쌈을 잘 합니다. 함부로 덤비진 못 할 겁니다.
      "왜 그래 임마!"
      "잘 있어라."
      그냥 그 말만 하고 나왔습니다. 나와서 사진을 보니 다림이가 너무 안타가와 보입니다. 자기는 그 사실을 알까요?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사내들이 자기의 모습을 보며 냉소한다는 사실을... 조롱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묘한 생각으로 흥분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생각들이 다림이의 모습보다 내 머리속을 점점 지배하여 갑니다. 다림이를 생각할 때 아까 동윤이와 용준씨의 웃음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웃음들이 떠 오를때 다림이의 아름다운 기억은 지워지고 있습니다. 찢은 종이를 구기며 한 손에 쥐었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왔습니다.

      "형아야 무슨 안 좋은 일 있냐?"
      "밥은?"
      "먹었지? 표정이 별로 안 좋다?"
      "니 애인은?"
      "잘 있어. 형 애인도 잘 있냐?"
      "자 자."

      자려고 누웠는데 헨드폰이 울렸습니다. 그냥 꺼 버렸습니다. 또 울릴까봐 아예 밧데리를 뽑아 버렸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잊혀질거야. 생각하지 않으면 되지 뭐.'
      잠이 올리가 없지요. 다림이는 내게 이런 사진 찍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자신도 이 사진들이 나를 기분나쁘게 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부끄럽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말 안했을 것입니다. 그 사실에 기분이 더 나쁩니다. 태연한 표정으로 날 만났다는 사실도 기분이 더럽구요. 왜 저런 걸 찍었을까?
      모른척하고 그냥 넘어 가려고 했던 내 마음은 잠이 안 들고 정신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한 여인을 지워 버리자,하는 선까지 와 버렸습니다.
      '그래 둘 중 하나를 잊자.'
      싫은 웃음과 아름다운 기억의 다림이 중에 지금 압도적으로 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싫은 웃음들이었습니다. 해 뜰 무렵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든 나는 엄마의 밥 먹어, 라는 소리에 일어 났습니다. 내 머리맡의 헨드폰은 지금 마비되어 있습니다. 풀어 주어야 겠지요.
      '[호출]: 다리미.'
      "훗!"

      오전 햇살이 그 다지 좋지 않습니다. 답답한 가슴으로 가을 하늘 또한 별로 높지 않습니다. 많이도 설레이고 많이도 기대했던 내 사랑은 왜 하필 다림이였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림이로 인해서 잊고 살려던 사랑을 생각해 내고는 미소 지은 예전의 오전이 아닙니다.
      전화를 했습니다.
      "나야."
      "응. 오빠구나. 잘 잤어요?"
      "이제 일어났어."
      "늦잠 잤구나."
      "흠 일찍 일어 나셔야죠. 어제 밤에는 전화가 안 되더라."
      언제나 맑은 음악처럼 들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오늘은 가식적으로 들립니다.
      "오후에 좀 보자."
      "학교 안 가세요? 참! 기쁜 소식. 나 일자리 구했어요."
      그 일자리가 삼류 잡지책의 모델 일이 겠지요. 그게 기쁜 소식인가요. 싫네요.
      "두시쯤 여우사이로 와라."
      "두시에요? 알았어요."

      다림이와 약속이 잡힌 시간까지 또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싫은 웃음과 눈빛들은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외출을 했습니다. 어제 구겨 뭉쳤던 그녀의 나신이 지금 내 호주머니에 있습니다. 햇살은 어느 날 보다 여웁고 하늘은 어느 날 보다 파랗게 높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금방 질 것 같은 초로(草露)같으며 그 모습처럼 비장합니다. 오늘 그녀를 잊겠습니다. 풀잎은 이슬을 머금었을때가 가장 아름다와 보이지만 그 이슬이 떨어져 나가도 푸르를 수 있습니다. 먹물이 튄 것 보다는 낫지요.

      그녀가 먼저 와 앉아 있군요. 오늘따라 왜 저렇게 밝은 모습일까요. 그것도 싫습니다. 손 흔들지 마란 말이야.
      앉았습니다. 내 마음은 다짐을 했지만 앞에 앉은 그녀는 그래도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금새 나쁜 상념들이 끼어 듭니다.
      "뭐 마실래요? 오늘은 내가 사 드릴께요. 나 직장 구했어요. 예전에 오빠가 한 번 말했던 직업이에요."
      어색한 미소를 한 번 지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미소를 띄우기가 버겁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까지만 앉아 있겠습니다.
      그녀는 커피잔과 입맞춤하며 무엇이 즐거운지 보조개를 드리우고는 밝은 표정입니다.
      "무엇때문이었냐?"
      "뭐가요?"
      "무엇때문에 그런 사진 찍었냐고?"
      그녀는 지금 나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꼬마가 아빠의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훔치다 들킨 표정의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입술을 깨 뭅니다.
      "무슨 사진..."
      "이유야 있겠지. 하지만 이젠 상관하지 않을게. 뭐 내가 상관한 적도 없었지만..."
      아까의 밝은 표정은 어디로 갔습니까? 다림씨.
      "저도 몰랐어요."
      몰랐다고 말하면서 표정엔 뭔가 안다는 것을 역력히 읽을 수 있습니다.
      "흠."
      웃음 한 줌 지어주고 일어 섰습니다. 그녀는 표정없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 봅니다.
      "왜 일어 서는..."
      때마침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그녀의 나신이 잡히는 군요. 테이블 위에다 던졌습니다. 그녀는 한 때는 저보다 예쁜 손이 있을까했던 작은 손으로 그 뭉치를 잡는군요. 펴 보지 않아도 알겠죠. 펴 봤으면 자신이 더 초라해 진다는 사실을 알았나 봅니다. 그냥 고개만 떨구었습니다.
      "잘 있어."
      그녀는 그냥 앉아 있군요. 한 숨을 내 쉬어 봅니다.

      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냥 걸어서 집까지 가렵니다. 길가에 서서 내 헨드폰 서비스 회사를 광고하는 나레이터 모델들을 보았습니다. 손에 쥔 헨드폰의 감촉이 예전에는 저 여인들보다 훨씬 감미로웠는데 이제는 아니군요. 서러우니까 입술이 떨리고 눈물까지 납니다. 괜히 그랬나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까짓 사진 몇 장 찍었다고 내가 너무 과민반응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차라리 나 혼자서 잡지를 사가지고 보았다면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내 친구는 내 사랑을 보며 아주 천한 어투로 아무렇지도 않게 싫은 말, 싫은 웃음을 내 뱉었습니다.

      오늘 나는 사랑을 잠시 잊겠습니다. 다시 설레이지 않고 예전의 나로 돌아가겠습니다. 도서관 앞에 가면 이쁜 여학생들이 많을거야. 그네들 보며 대충 꿈꾸며 대충 흉보며 그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죠.
      또 아나요. 인연이 생길지...
      하지만 오늘 밤 나는 헨드폰이 울리기를 참 많이도 바랐습니다. 하지만 울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헨드폰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헨드폰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화가 납니다.
      오늘 드디어 헨드폰이 울렸습니다. 어제의 화 때문에 받지 않았습니다. 호출, 다리미라고 써 있습니다.
      그 후 세 번이 더 울렸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기다렸던 그녀의 소식이었지만 받기가 어색했습니다.
      싫은 웃음이 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헨드폰이 울렸습니다. 하지만 또 못받겠습니다. 오늘은 내 기분이 그리움인지 뭔가하는 가을 느낌 때문에 받기가 싫었습니다. 어제보다 한 번이 덜 울렸습니다.

      오늘은 헨드폰이 한 번만 울렸습니다. 받으려다가 헨드폰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호출, 다리미라고 적히기를 기대하며 받지를 않았습니다. 내 기대대로 그렇게 적혔습니다. 하지만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헨드폰이 한 번 울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메세지는 없었습니다. 단지 부재중 전화 한 통이라는 메세지만 떠 있습니다.

      오늘은 다림이가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싫은 웃음도 많이 지워졌구요. 오늘은 헨드폰이 세 번이 울렸습니다. 음성도 들어왔군요.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받지도 않았을 뿐더러 음성을 듣지도 않은채 지워 버렸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변명이라도 하면 다시 그 싫은 기분이 들까봐 외면했습니다. 내일 전화가 오면 새로운 기분으로 사과를 하고 다시 만날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은 참 기대했지만 헨드폰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헨드폰은 울리지 않습니다. 헨드폰이 고장이 났을까,하여 내가 전화를 해 봅니다. 잘 울리는 군요. 내 헨드폰은 좋은 것이기 때문에 고장이 잘 안납니다.

      오늘도 헨드폰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가을은 너무나 깊어 이제 더 이상 높아 질 수 없는 하늘은 낮아지기 시작합니다. 그 하늘 보다 훨씬 낮은 구름이 끼더니 십일월의 비가 내렸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영상에 끼어 들어왔던 기분 더럽던 다른 것들은 이미 지워져 버렸습니다. 그녀를 참 많이도 가렸던 동윤이의 웃음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단지 이제는 예전에 나를 설레이게 만들었던 다림이의 모습만 뚜렷하게 기억되어 나를 그리움으로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전화기에 몇 번이고 손을 대었다 떼었습니다. 늦었나 봅니다. 전화하기가 껄끄럽습니다. 내일은 더 못하겠지요.

      오늘 헨드폰이 울렸습니다.
      "거기 짱개 집이죠?"
      이런 개같은 경우가 헨드폰에다 전화를 해놓고 짱개 집이죠? 이거 미친놈 아녀?
      문득 문득 생각나면 지워 지겠지요. 하지만 오늘 다림이가 하루 종일 생각이 났습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