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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불명 연애소설 16편

관리자 2019.08.12 14:59 조회 수 : 27

      11월이 가면서 설레이지 않으니까 그녀의 모습도 잊혀지더군요.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은 잊혀진 거 맞죠? 하지만 어디선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학교는 차분히 가을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날 것이기에 슬픈 표정은 아닙니다.
      여기 저기 벗은 나무들이 겨울이 옴을 두려워 하는 듯 옅은 바람에도 잔가지들을 떨고 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나오긴 합니다. 그래도 다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릴 찾아 봐야겠습니다. 예전의 팜플렛 돌리는 일이나 할까합니다.

      오늘은 학교 근처를 배회하다가 예전의 미술학원이 있는 곳까지 걸어 봤습니다. 혹시나 우연히 다림이를 만날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만난다면 그냥 아는 체 할 수가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그런 기대데로 만났습니다.
      "어! 주원이 학생."
      원장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다림이만큼은 아니겠지만 반가웠습니다.
      "예. 어떻게 학원에 안 계시고."
      "잠깐 나왔다가 지금 들어가는 길이야. 주원이 학생은 웬일이야?"
      "네. 그냥."
      "다림이와는 잘되어 가?"
      "네?"
      "뭘 숨길려고 그래. 학생이 다림이 좋아하는거야 예전에 들켰는데."
      "네. 그냥 뭐."
      "다림이가 요즘 바쁜가 봐. 통 찾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뜸하네."
      "네. 뭐 바쁜가 보죠."
      "주원이 학생. 안 바쁘면 들어가서 차 한잔 하고 가."
      들어 갈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림이 소식을 들을까해서 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학원은 내 기억 속의 모습과 전혀 바뀐게 없습니다.

      늦가을 진한 다방식 커피의 향내가 오늘 하루를 옛 기억 속으로 몰고 갑니다. 원장 아줌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장 아줌마는 다림이가 누드 모델을 했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듯 말을 꺼냈다가 이내 얼버무렸습니다. 그것이 자주 되었지요.
      "원장 샘. 저도 다림이가 누드모델 했다는 거 알거든요. 그렇게 숨기실 필요없어요."
      "정말? 학생이 물어 본 거야?"
      "아뇨. 얘기해 주더라구요."
      "다림이가 학생을 많이 좋아하나 보다. 그거 잘 얘기 하지 않거든. 다림이는 그렇게 모델 서는 걸 부끄러워 하더라구. 내가 처음에 권유 했었는데 자기한테 잘 해 준 사람들이 부탁을 하니까 거절을 못하고 몇 번 했었지. 하지만 걔 누드모델이 직업은 아니야."
      "그것도 알아요."
      "그것 때문에 다림이와 안 좋은 일 없었지?"
      "네."
      "다행이네. 괜한 생각 해 가지고 다림이를 안 좋게 볼까봐 다소 걱정을 했는데."
      원장 아줌마가 다림이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 이야기들이 아직 남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식적으로 앉아 있는 내 자신이 싫기도 합니다. 옛 기억은 날 미소짓게 하지만 이젠 남처럼 연락도 되지 않는 그녀를 이렇게 둘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저. 다림이하고 이제 연락 안해요."
      커피잔이 다 비워졌을 무렵, 이제는 일어서 집으로 갈 요량으로 사실을 말했습니다.
      "뭐? 연락을 왜 안해?"
      연락하지 않는 다는 말이 헤어졌다는 말로 알아 듣는 것이 원장 아줌마한테는 어렵습니까? 무식하네요.
      "그냥."
      "싸웠어? 일주일 전에도 괜찮은 것 같더니. 뭐 싸울 수도 있지. 연락해 봐."
      "일주일 전이라뇨?"
      "일주일 전에 전화가 왔길래, 학생 얘기 꺼내었더니 잘 사귀고 있다며 학생이 자기한테 잘해 준다고 하던데."
      다림이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같군요. 하기야 나같은 녀석한테 차였으니 그렇게 말 할만도 합니다.
      "연락 안 할거에요. 가 볼게요."
      나는 그냥 다림이를 만난지 오래되고 해서 생각없이 꺼낸 말인데 원장 아줌마의 반응은 컸습니다.
      "잠깐 더 얘기하고 가. 연락 안 한다니. 말 참 쉽게한다."
      "왜 그래요."
      "뭐 때문에 그러는지 잘 몰라도 학생이 먼저 좋아했으니까 다림이가 싫다고 그럴 때까지는 책임을 져야지."
      무슨 저런 전 근대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까.그러니까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면서도 아직 아줌마가 못 되었지.
      "저 가야 겠습니다."
      "말해보라니까. 혹시?"
      "혹시 뭐요. 그냥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연락하기 싫어요."
      원장 아줌마가 머리를 굴렸습니다. 뭔가 입을 오물거리는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봅니다. 일어 서려다 다시 앉았습니다.
      "제법 오래 전부터 다림이가 이상하게 학생 얘기 나오니까 말을 돌리는 것 같았거든. 혹시 연락 끊은지 오래 된 것 아냐?"
      분위기 파악이 좀 됐나 봅니다.
      "한 달 훨씬 넘었어요."
      "요즘 젊은 것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더니 가까운 곳에도 있었네. 왜 헤어졌는데?"
      "쉽게 안 만났어요. 그리고 깊이 사귄 것도 아닌데요."
      "사귀는 거에 정도가 어딨어. 서로 좋아하면 사귀는 거지. 학생이 사랑한다고 말했다며."
      살 열 받네요. 왜 저리 신경을 쓸까요.
      "담배 한 대 필께요."
      "펴."
      "원장 샘이 뭐 때문에 열을 내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내가 언제 그런말 했다고 그래요?"
      "저번에 야외 스케치하러 갔을 때 얘기 했다는데. 다림이가 얼마나 자랑했는데."
      그걸 들었단 말입니까. 여자도 남자들처럼 간혹 내 뱉는 짧은 말 한마디를 가지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하는군요. 못 들은 줄 알았는데 기분이 괜찮습니다. 담배를 꺼내 물었습니다. 담배를 피면서 원장 아줌마의 말을 들었습니다.
      "다림이는 내 친동생같은 애야. 상처 받는 걸 원하지 않아. 다림이도 학생 좋아한 지 꽤 되었어. 학생이 다림이 좋아하는거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 딱 눈빛만 보면 모르겠냐?
      철가방이라 전혀 무시할 줄 알았는데 다림이가 점점 철가방 얘기를 많이 하더라. 걔가 학생을 좋아하는 것 같길래 내가 시험을 해 봤지. 한동안 짜장면을 안시키고 피자다. 김밥이다 다른 걸 먹었거든. 내가 이제 짜장면은 질려서 먹기 싫다 그랬지. 한 오일은 내색을 안하더니 나중엔 자기는 꼭 중국음식 먹어야 겠으니 언니는 먹고 싶은거 먹어, 그러더라. 그래서 물어봤지. 너 철가방 때문에 그러지,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대뜸 하는 말이 철가방이 자길 좋아하는 것 같대. 나 좋아하는 사람 싫지는 않지 뭐. 장미도 아마 그 사람이 갖다 놓은 것 같더라.라고 말했어. 참 순진하고 일단 사람이 좋아지면 한 없이 좋아해버리는 애야. 그렇기때문에 학생이 먼저 좋아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돼. 걔 정을 좀 못받고 자랐거든 정 준 사람한테 상처받으면 이겨내는데 상당한 기간과 힘이 들거야."
      다림이가 가엽고 귀엽게 느껴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연락을 않고 지낸 기간이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한다거나 예전처럼 설레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림이를 생각하면 떠 오르는 사진들 때문에 싫습니다. 비록 사진들 속의 싫은 웃음은 잊혀졌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헤어진 이상 그것이 힘들게 할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앗! 뜨거. 담배를 끈다는 것을 잊었군요. 가야겠습니다.
      "다림이가 연락을 안하는데요 뭘. 원장 샘이 모르는 일 때문에 그런거니까 간섭이나 신경 써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학생. 다림이 좋아했던 것 아냐?"
      "좋아 했지요."
      "뭐 때문이야? 혹시 그거 본 것 아니야?"
      "또 뭐요?"
      "잡지사 사진."
      "예?"
      "표정을 보니 맞구나. 진짜 미안하게 되었네. 어쩌지."
      "뭘요?"
      원장 아줌마의 얼굴엔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입니다. 내 얼굴을 살피는 모습이 말할까 말까 합니다.
      "사진..."
      "맞아요. 이상한 사진 봤어요."
      "그렇구나. 난 이해할 줄 알았는데. 학생이 다림이가 누드모델했다는 것도 안다고해서 그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때문이었구나."
      "원장 아줌마도 알고 있었어요?"
      "아줌마 아니라니까. 사진들 그렇게 싫게 나왔어? 난 보진 못했거든 미안해서."
      잠시 원장 아줌마를 바라 보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누드모델 선 것하고 그거 하고는 많이 다르죠. 그런데 왜 미안한데요?"
      "내가 소개시켜 주었거든."
      이 아줌마가 진짜. 친동생 같다면서 완전히 팔아 먹은 거 아녀? 화가 살 납니다.
      "그 사진이 어떤 사진인 줄 아세요?"
      "안 봤다니까. 볼 자신이 없었어. 내가 아는 사람중에 작품 사진 찍는 사람이 있거든. 모델을 찾더라구. 마침 다림이가 금전적으로 어려웠어. 친구랑 같이 사는 자취방 월세도 두달이나 밀렸다구 말하는 걸 들었거든. 그래서 일단 물어나 봤지. 솔직히 권유했어. 작품사진인 줄 알았으니까. 근데 그게 아니었어. 다림이도 모르고 계약했다가 할 수 없이 찍었지. 그거 찍고 와서 나한테 많이도 하소연하며 울더라. 그 자식 나한테는 그런 말 안했거든. 하기야 그 사람도 먹고 살기가 어려워 잡지사 쪽으로 갔겠지만..."
      맘이 아팠습니다. 내가 다림이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다림이의 말을 들어나 볼 걸,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전화를 받지 않은 것도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난 사진보다 다른 것에 화가 났었기에 나를 변명했습니다.
      "그랬군요. 다소 오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에요."
      "미안해. 다림이 한 번 만나봐. 오해가 풀렸으면 만나야지. 다림이가 학생을 진짜 좋아했다면 아직 못 잊었을거야. 걔 짝사랑하던 오빠가 결혼했을 때도 한참 동안 못잊고 혹시나 이혼하고 그사람이 외롭다고 느낄 때 자기가 짜잔! 하고 나타날 거라 말했던 애야."
      "알았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용기는 서지 않습니다. 학원을 나와서 한 동안 헨드폰을 만지작 거리긴 했으나 전화를 하진 못했습니다. 원장 아줌마는 그 사진을 못 봤다고 했습니다. 그 사진이 얼마나 뇌쇄적이고 상업적인 사진인지 모를 겁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모를 것이고 내가 그 사진을 다림이에게 던져 주었을 때의 표정을 못 봤기에 다림이의 마음도 모를 것입니다. 그렇게 전화를 했는데 모른 체한 나를 다림이가 웃으며 받아 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될 지라도 제 기분이 좋을 리 없습니다. 더 천박한 여자로 보일테니까요. 싫은 사내들의 웃음속에 천박한 이미지까지 들어 간다면 다림이는 더 이상 내 기억속에 존재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지요. 지금은 추억이 아름다워 다림이가 그립거든요. 그 그리움을 뺏기긴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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