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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불명 연애소설 마지막편

관리자 2019.08.12 14:59 조회 수 : 4

      잊혀지는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제처럼 살다가 오늘 생각이 나지 않으면 잊혀지는 것인지, 기분좋게 언젠가는 만나겠지 하면서 모르게 모르게 잊혀져 가는 것인지, 아니면 참 보고 싶은데 외면하며 잊어 가는게 잊혀지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먼 훗날 어떤 사람이 문득 보고 싶은데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이 진정 잊혀 진 것인지...

      "형아야. 고 년이 말이다."
      "누구?"
      이불 속에 누워 잠이 막 들려고 하는데 옆에서 끙끙 거리던 동생이 말을 걸었습니다.
      "내 애인 은정이 말이다."
      "고년이 뭐?"
      "내가 고 년이라고 말 한다고 형까지 그러면 안돼지."
      "그래 걔가 뭐?"
      "걔가 날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잊기 싫은 사람이라고 말했거든? 그게 무슨 뜻일까?"
      "너 걔하고 원수진 일 있냐? 원래 원수는 못 잊어."
      "역시 형하고는 대화가 안되는구나. 우린 이런 사이다,라는 걸 자랑 할 려고 했던 건데... 쯧쯧."
      "잠이나 자 임마."
      "형 요즘은 헨드폰이 통 안 울린다?"
      "진동으로 해 놔서 그래. 나만 느낄 수 있는 진동."
      "잘 해 봐라. 으이그 불쌍한 우리 형아."
      "넌 잘 되어가나 보다?"
      "그럼. 형 보다 먼저 장가간다고 뭐라 그러지 마."
      "뱃살이나 빼 임마. 그것도 이혼 사유 돼."

      잠이 들었으면 그냥 잊고 넘겼을텐데 오늘 밤은 원장 아줌마와 동생때문에 다림이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도서관 앞은 기말고사관계로 학생들이 많습니다. 제법 입 속에서 더운 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걸로 봐서 사람들 마음이 현실보다는 따뜻한 가 봅니다. 도서관 자리 잡기가 점점 힘들어 지지요. 이럴때는 아르바이트나 하는 게 제일입니다. 모레부터 며칠 정도 일 할 건수가 생겼습니다. 코엑스 가구 전시회 팜플렛 돌리는 일이요. 전시 기간이 한 오일 되니까 그 기간 열심히 전단을 돌리다 보면 십여만원 거뜬히 벌겠습니다.
      "오빠!"
      우리과 그녀군요. 요즘 도서관에서 통 못봤는데 오늘은 시험이 다가 와서 그런지 모습을 나타내었네요. 많이 예뻐졌군요. 오빠,라는 소리가 그렇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어. 오랜만이다."
      "아직도 여학생 쳐다보며 담배 피냐?"
      "넌 왜 엉덩이 안 치냐?"
      "성희롱 죄 벌금이 쎄다며."
      "그게 희롱인 건 아는구나. 안보이더니 어쩐 일이냐?"
      "안 보인건 이 몸이 공부를 잘해서 6학점만 들어서 그런거고 오늘은 레포트 쓸 게 있어서 도서관에 나와 봤지. 오빠는 복학 안 했지?"
      "응. 뭐 애인 생겼다더니 잘 돼가?"
      "모르겠어."
      "니 생긴게 예전하고 많이 달라진 걸 보면 잘 되어 가는 것도 같은데?"
      "흠. 나는 이만 갈란다. 열심히 하고 오빠 150은 너무 짜니까 200 놓고 다음에 당구 한 번 치자?"
      "그려. 잘 가라." 

      우리과 그녀가 대학원생 누구하고 사귄다고 그러는 것 같았는데 오늘 그녀의 얼굴은 그렇게 밝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당구장에서 보낸 것 같습니다. 도서관 자리를 못 잡았거든요. 공부하는 놈들 갖은 유혹으로 당구장에 데리고 갔지요. 몇 판 이겨주니까 갈 생각을 안 하더군요.
      우리과 그녀 얘기도 나왔습니다. 말 그렇게 하면 안되지요. 그런 머슴애 같은 여자는 애인이 있으면 안 됩니까?
      "우리 과 그녀도 애인이 있는데 여기 애인 없는 놈들 다 죽어라."
      아무리 지가 애인이 있고 세 판을 내리 졌다해도 저런 말 하면 안되지요. 그 놈은 그 말만 남기고 계산을 하고는 나가 버렸습니다.
      "한 게임 더?"
      "오케바리."
      남아 있는 놈들끼리 계속 당구를 쳤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눈을 뜨니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아침이 서둘러 졌습니다. 아무리 전단지 돌리는 일이지만 전시회장 근처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일입니다. 전시회 주최측의 입장도 있고 해서 추리닝을 입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머리도 빗어야 겠지요. 겨울 외투가 오늘은 어색하지 않습니다.

      코엑스 삼층이군요. 전시회장이 문을 열려면 아직 한시간 이상 있어야 합니다. 코엑스를 찾은 사람도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전시회장에 도착하니 나를 고용한 형이 이상한 방으로 날 끌고 갔습니다. 창고 비슷한 방이지요. 전에도 와 봤습니다. 전단지가 왜 저리 많대요?
      전단지 돌리려고 부른 애가 나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내 참 연인끼리 아르바이트 하러 온 건 처음 봤습니다. 눈꼴 시럽다 진짜. '자기 꺼 나 좀 줘. 너무 많다.'
      '아니 괜찮아. 자기 힘든 것 보다는 나아.' 저 두 년놈들 오늘 둘이 붙어서 같은 장소서 전단지 돌리기 만 해 봐. 내 일당 일 인분만 계산해서 주라고 그럴거여. 난 왜 이렇게 많이 주는겨? 행사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레레 예쁜 옷의 처녀도 있었군요. 이상한 방에서 전단지를 배분 받고 있는데 나레이터 모델이 뭘 물어 보러 들어 왔습니다. 아는 형 참 친절히 대답해 주네요.
      "형 이거 지금부터 돌려요?"
      "니 알아서 해 임마. 네. 실장님 찾아 가시면 됩니다. 아마 전시회장 문앞이 될 것 같은데요."
      미소가 아름다운 여인이군요. 벌써 유니폼으로 갈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전시회장을 밝게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전단지 뿌리고 점심 먹을 때 같이 먹을 수도 있겠군요. 나는 나가 볼랍니다. 지하철 출구에서부터 시작하면 오전 중으로 반 이상 돌릴 수 있을 겁니다.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였죠. 전시회장은 관계자들이 제법 모였군요. 나레이터 모델이 둘이 더 있었습니다. 뒷 모습이 참 예쁜 여인과 옆 모습이 섹쉬한 여인이 관계자 중 한 명의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아까 본 여인도 이제 저기 보이는 군요. 제가 잘하는 짓이 있지요. 괜히 여인들 한 번 쳐다 보려고 그 무거운 전단지들 들고 괜히 돌아서 그녀들이 있는 근처로 가 보았지요. 꼭 스튜어디스 같습니다.

      비록 양복입은 관계자들이 눈치를 주는 것 같아 여인들하고 눈은 마주치지 못했지만 근처까지 갔다는게 어딥니까. 전단지 다 들고 갈 필요는 없지요. 내 분량의 반은 입구 데스크 밑에다 놓아 두고 갔습니다.

      지하철 입구 쪽으로 나갔습니다. 제법 날씨가 쌀쌀합니다. 고개를 들어 무역센터 빌딩을 올려다 봤습니다.
      '졸라 높다! 이런 곳에나 취직하면 좋겠다.'

      저 년놈들 전단지를 남자만 든게 수상쩍습니다. 둘이서 웃으며 오는 꼴도 수상쩍습니다.
      "이 봐요. 그 붙어 있지 말고. 한사람은 지하철 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코엑스 실내로 가요. 그 에스컬레이터 앞이 좋더구먼."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신경쓰지 마세요."
      "별꼴이야 정말. 가자 자기."
      열 받네요. 너 몇살이야 이뇬아? 이러고 싶었지만 저 무거운 전단지들을 한 손으로 들고 게다가 웃으면서 말까지 하는 남자 녀석이 힘이 세어 보여서 참았습니다.
      "그럼 알아서 하세요."
      "지금 코엑스 삼층에서 전시 중입니다. 한 번 들러 주세요."
      전단지 줄 때 양손 호주머니에 떡 끼고 째려 보는 사람들 정말 싫어요. 웃으며 받아 주는 사람은 너무 좋구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다.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한 시간이 되기 전에 들고온 전단지를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더 가지고 올까, 여기서 그냥 놀다가 점심 시간 되면 들어 갈까. 고민을 하다가 에... 고민하다 보니까 시간이 그럭저럭 점심시간 근처까지 흘러 갔습니다. 결정을 봤지요. 가자.

      전시회장으로 사람들이 제법 많이 들어갑니다. 모두들 내가 숨은 공로자란 걸 알까요?
      "어서 오십시오."
      안내겸 인사를 올리는 전시회장 문 앞의 나레이터 모델 둘의 목소리가 아름답습니다. 한 여인보다 많이 예쁜 다른 한 여인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입니다. 아까 이상한 방에서 본 여인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 여인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안에서 안내를 맡고 있나 봅니다.
      두 나레이터 근처에 데스크가 있습니다. 그 데스크 밑에는 내 전단지가 있지요. 그걸 가지러 가는 핑계로 나레이터 모델들이나 구경하고 와야 겠습니다.
      왜 째려 봐요? 예쁘면 답니까? 한 여인은 그냥 손님을 맞이하며 인사하고 있는데 더 예쁜 한 여인이 나를 보고 표정이 굳었습니다.
      참 눈에 익다 했더니 모자를 쓰고 단정한 머리에 화장이 좀 짙어서 얼른 못 알아 봤을까요. 참 낯설어야 되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다림이 네가 여기 왠일이냐?"
      나레이터 모델 중 한명은 다림이 그녀 였습니다. 물었으면 답을 해야지. 한 동안 나를 보며 표정이 굳었던 다림이는 다시 환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 합니다. 나를 외면하고 말입니다.
      이번엔 내가 표정이 굳어 그녀를 쳐다 봤습니다. 그녀 옆에 멍하니 서서 말입니다. 더 이상 나를 쳐다 보지 않으려나 봅니다. 그냥 자기 일에 열중이군요. 잊었다 생각을 했는데 기분이 묘 합니다. 한 참 쳐다 보고 있다가 전시회장에서 관계자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전단지만 꺼내어 그 곳을 떴습니다. 괜히 꺼내 왔습니다. 전단지를 들고 밥 먹으러 가야 되겠군요.

      날 고용한 형하고 다른 어떤 놈 하나하고 나레이터 모델 둘하고 하나는 자릴 비울 수 없었나보지요. 아까 그 년놈들 하고 밥을 같이 먹게 되었어요. 참내 그 뻔히 아는 여자가 저렇게 바로 내 앞에서 모른 척 하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네요. 슬픈 웃음이요.
      지가 아는 척 하지 않는데 내가 굳이 아는 척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먹어라. 그런데 오랜만에 본 다림이의 모습이 왜 저리 예쁩니까? 사랑스럽구요.
      가끔씩 나를 쳐다보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눈동자를 돌리는 다림이를 보았습니다. 다시 아는체 해 볼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만 그녀가 답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라? 저건 내가 준 헨드폰 아녀? 아직 들고 다녔단 말이여? 내 통장 정리를 한 번 해 봐야겠습니다. 이동 통신비로 한달에 얼마씩 나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난 거의 헨드폰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어쭈, 내가 뻔히 보는 앞에서 딴 곳에다 전화를 한 단 말이여? 그거 내 돈 나간단 말이여.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기쁩니다. 아직 내가 그녀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네요. 어짜피 의무가입기간 끝날려면 많이 남았는데 잘 쓰쇼.
      누구에게 저렇게 웃음을 띠고 있을까요? 전에 난 저 웃음을 잠시 소유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림이한테 말 거는 남자 둘이가 밉게 보이지만 상관할 일은 아니겠지요. 전단지나 돌리러 가겠습니다. 내가 일어서는데도 그녀는 날 쳐다보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연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어쩌다 마주친 우연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오늘 오후의 노을이 다른 날보다 붉은건 내 마음에 그리움이 홍조를 띠었기때문이고 저 가로등이 너무나 초라하게 일찍 불을 밝힌건 내 서글픔을 달래기 위해서 인가.
      다림이는 다리가 아프겠습니다. 저렇게 하루 종일 서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뭐 꼼짝도 않고 몇 시간씩 모델도 섰었는데요. 내일도 보겠네요. 어짜피 이 일 끝날 때까지는 보기 싫어도 만나 질겁니다.

      오늘은 다른 나레이터 모델들보다 다림이가 먼저 나왔네요. 전단지를 들고 나가다 아직 옷을 갈아 입지 않은 평복 차림의 다림이를 보았습니다. 아직 열지 않은 전시회장 문에 기대어 나를 쳐다 봅니다. 복수다. 시선은 물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잘 해 봐라.

      "코엑스 삼층에서 전시중입니다. 예쁜 나레이터 모델도 있어요."
      만만하게 보이는 대학생 같은 놈들이 지나가길래 한 뭉치 안겨 주었습니다. '그녀가 한때 날 좋아 했었단다, 얘들아.'

      오늘 점심때도 다림이와 마주하며 밥을 먹었으나 역시 모른 척 하는군요. 다림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한 척 웃어도 주고 답도 해 줍니다. 예쁘다고 말 거는 놈들 싫네요. 나도 아는 척 하고 싶어 죽겠는데 그 놈의 자존심과 어색함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어떻게 어제 생각지 못하고 만났을 때는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내 마음속의 그녀가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녀는 잊혀지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있었나 봅니다. 큰일입니다. 그럼 이 일이 끝나고 다림이를 다시 못 보게 될 때 힘들어 지겠지요. 내일부터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다림이를 내 시선에서 사라지게 하는 연습 말입니다. 그 생각이 날 서글퍼게 만들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라? 오늘도 전화질이여? 오늘은 전화기에다 대고 웃는 다림이의 모습이 싫습니다. 헨드폰은 내 것인데 저 웃음은 다른 사람에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다림이가 전화하는 모습을 보며 일어 섰습니다. 내가 밥을 제일 빨리 먹었네요. 저 새끼 덩치는 큰 새끼가 자기 애인하고 보조 맞추어 먹는다고 숟가락 질 하는 꼴이 맘에 안 듭니다. 저 둘이가 뿌린 전단지가 나 혼자 뿌린 양보다 적습니다. 저런 애들을 왜 고용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림이를 한 번 째려 보고는 그 자릴 떴습니다.
      '뭘 봐? 전화질이나 계속 하지.'

      오늘 아르바이트 한지 삼일째고다림이를 다시 보게 된지도 삼일째입니다. 아르바이트는 삼일째가 되겠지만 다림이를 다시 보는 것은 그렇지 못할 겁니다. 어제 밤에 다짐을 했습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전시회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일찍 나와 있는 날 고용한 형에게 부탁해 오늘 분량의 전단지를 꺼내어 왔습니다. 오늘은 아예 점심도 먹지 않을 겁니다. 다림이를 보지 않겠습니다.
      하. 그 참. 다림이 저거는 왜 저렇게 일찍 나오는 겁니까.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다 올라오는 다림이를 보았습니다. 날 바로 쳐다보는군요. 날 보고 어색하지만 웃음도 보이네요. 이제 그녀가 나보다 높아지려 합니다. 그 순간 바로 옆으로 다가온 다림이가 어색하여 들고 있는 전단지 몇 장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녀는 저기 위로 올라갔습니다.
      돌아 봤습니다. 그냥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올라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 당신은 그렇게 나보다 위에 있을 때 그리고 나를 그렇게 어색하지 않게 몰랐던 예전의 모습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하다.

      점심도 안 먹고 전단지 뿌리니까 어제보다 훨씬 빨리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네요. 날 고용한 형에게 오늘 일은 다 하고 간다는 말을 하고 가야 했지만 뭐 예전에 믿음을 준 사람이기 때문에 날 믿을 것입니다. 일당을 받아야 하는데 일이 끝나고 오일치를 한꺼번에 준다는게 석연치 않지만 그 형도 나에게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직 해가 저렇게 떠 있는데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었습니다. 괜히 학교를 갔었지요. 도서관 앞에는 여전히 학생들이 많습니다. 당구나 한게임 치려고 온 것인데 마침 잘 되었습니다. 우리과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녀 이름을 불렀는데 못 들은 척 그냥 힘없이 걷고 있습니다. 확 가서 나도 엉덩이나 쳐 버릴까보다.
      "야!"
      뒤쫓아가서 그녀 바로 귀에다 대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응? 형이구나."
      "어. 왜 또 형이야."
      "응. 그냥..."
      "당구 한 게임하자?"
      "당구? 오늘은 그냥 집에 갈래."
      "시험 떡 쳤냐? 힘이 없어 보인다."
      "아니야. 나 갈게."
      "으이씨. 그래 잘 가라. 이제 누굴 꼬시지?"
      우리과 그녀가 힘이 많이 없어 보입니다. 지나치는 그녀를 뒤로 하고 내 기분을 풀어 줄 누군가를 찾으러 고개를 돌릴 때였습니다.
      "형!"
      우리과 그녀가 가다가 돌아서 나를 부르는군요.
      "왜? 한 게임 할래?"
      "아니. 술 한 잔 할래?"
      "술?"
      "좀 사주라. 선배 좋다는게 뭐냐."
      "못 사줄 이유는 없지만 너 술 진짜 세잖아."
      "오늘은 조금만 마실게."
      "그럴까? 진짜 쫌만 마셔. 그래 가자."

      다소 슬픈 얼굴의 우리과 그녀와 나 사이에 소주가 두병이 놓였습니다. 한 병은 빈병입니다. 그냥 별 말 없이 주거니 받거니 한 잔씩 한 잔씩 들이켰습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이 번져있는 주점의 어두운 등불 밑에서 우리과 그녀는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 하소연 속에 나는 그리움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내가 여자로서 그렇게 매력이 없어? 응 형."
      "왜. 귀여운데."
      솔직히 조금... 남자들은 말이지 연약하고 자기가 품을 수 있는 여자를 대체로 원하지. 넌 조금 터프한게 사실이야. 외모도 별로 신경안쓰고 말이야. 지금은 예전보다 좀 볼만하다.
      "나 솔직히 이 학교 때려 치우고 재수할까도 생각을 했었어. 나 혼자만 여자인 것이 그렇게 외로움을 줄 줄은 몰랐거든."
      "일학년때 얘기냐?"
      "나보고 선 머슴애 같다고 그러는데 난 어울리고 싶었다고 그것 때문이었는데..."
      "갑자기 그 말은 왜 하냐?"
      "형은 남학생들이 무심결에 던지는 말들 하나 하나가 얼마나 날 아프게 했는지 모를거야. 하지만 난 이겨냈다고 생각해. 이제는 괜찮거든. 그래서 좋았어. 나도 그네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
      우리과 그녀는 홍조를 띠면서 또 술을 한 잔 들이켰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나 봅니다.
      "내숭도 떨기 싫었어. 동기들과 또는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여자가 아니라 너네들과 같은 과 학생으로서 친구이고 싶었기에 날 꾸미는 것에 소홀했다면 변명일까?"
      "무슨 안 좋은 일 있니?"
      "싫대. 나하고 같이 다니기 부끄럽대."
      "누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왜? 싸웠냐?"
      "싸우긴 끝났어 차였지."
      "뭐 땜에?"
      "여자 안 같대. 한 동안 지금까지 어울리던 친구들을 외면한 채. 난 여자이고 싶었고 내 딴에는 노력했어. 그 사람 하나를 위해서 이제는 어색하고 낯 간지러운 저 가정대의 예쁘고 내숭 많은 여학생이 하는 것처럼 하려고 노력했어. 안하던 색조 화장도 그래서 했어. 나 여름 방학때 신입생 여자들이 받는 차밍 스쿨 다닌거 모르지?"
      술이 떨어졌습니다. 한 병을 더 시켰습니다. 세 병째입니다. 난 반병 정도 밖에는 먹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여자가, 이 말을 너무 자주 들었어. 말도 함부로 한다고 그러고 내숭도 지을 줄 모르고 그렇게 화장하려면 차라리 말아라. 넌 치마 입을 줄 모르냐? 그런 말 많이 들었어. 형?"
      "왜."
      "나 진짜 여자 안 같지? 남자 엉덩이도 툭툭 치고 다니고 말이야. 울학교 여학생 중에 나만큼 당구 잘 치는 여학생 없을 걸."
      "맞아. 흔히 생각하는 여학생과는 좀 다르지. 그래도 귀여워."
      "흠. 나도 여자 같지 않다는 걸 알아. 남자들 틈에서 남자들 하는거 보면서 사년을 보냈어. 근데 있잖아. 나 말이야. 마음 속은 아주 여자다."
      우리과 그녀의 눈망울에 물기가 고였습니다.
      "나 그 사람 진짜 사랑했어. 슬픈 영화를 봤거든 극장에서 울면 그 사람이 생긴 것 같지 않게 눈물 흘린다고 할까봐.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 표정에 맞추었지만 내방에서 혼자가 되었을 때 밤새 그 영화를 떠올리며 그 사람이 그 영화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울었다. 답장도 별로 없었지만 그에게 보낸 편지도 꽤 많아. 내 글씨는 여자 글씨거든...
      그 사람이 날 보며 넌 꽃하고 인형은 별로 안좋아하겠다,말하며 사준 생일 선물은 공학용 전자 계산기였어. 계산기는 나한테 많아. 난 인형과 꽃을 참 좋아하거든. 내 방 침대는 인형으로 장식 되어 있고 내 책상과 거실의 화병엔 내가 항상 꽃을 사다 꽂지. 그래도 나는 그가 사준 계산기가 좋았어. 그런데 내가 여자 같지 못해서 싫대."
      "진짜 차였나?"
      "응."
      "네 성격에 그 놈을 가만히 나두냐?"
      "형도 네 성격을 그렇게 보는구나. 그렇나 보네. 내가 정말 여자같지 않나 보구나."
      "야. 왜 울어 임마."
      우리과 그녀가 우는 모습은 내가 제대후 그녀를 본 이후로 첨입니다. 너도 울 줄 아는구나. 넌 그랬잖아. 너네 동기놈이 슬퍼서 술 먹고 울면 '사내자식이 그깟 일로 눈물을 보이냐. 한잔 해.' 그랬던 니가 내 앞에서 울면 안되지. 나도 하소연 할게 많단 말이여.

      어색한 미소의 우리과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이 한 방울 떨구어졌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어느 소설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 눈물속에서 다림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과 그녀가 이제 술은 더 이상 마시지 않으려나 봅니다. 술이 세긴 세군요. 아직 말짷해 보입니다.
      "한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냐?"
      "뭘."
      "만약에 널 차 버린 그 사람하고 우연히 마주친다면 웃어 줄 수 있겠니?"
      "흠. 모르겠어. 힘들겠지."
      "그럼 반갑게 먼저 아는 척은 할 수 있겠어?"
      "그것도 힘들겠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아는척 하며 접근하면 싫겠니?"
      "싫긴. 우연히 마주친다면 그 사람이 날 아는체 해 주기를 바라며 그냥 바라만 보겠지."

      밤은 가로등 니깟 놈들이 아무리 밝혀봐라. 낮이 되는지, 그러며 어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말짱한 줄 알았던 우리과 그녀는 걸음걸이가 영 불안합니다. 자기는 그냥 집까지 걸어 간댑니다.
      "니네집 어디야?"
      "우리집? 우리집이 어디냐 하면...어. 우리 아빠가 사는 집이 우리 집 맞아?"
      "너 가출했냐?"
      "면목동이다. 무슨 전문대가 하나 있는데..."
      "혼자 갈 수 있겠냐?"
      "내가 소주 두병 마셨다고 취하는 거 봤어? 걸어가면 돼."
      할 수 없습니다. 데려다 주어야겠네요. 에구 아까운 내 돈. 택시비가 4000원이나 나왔습니다. 이런 거리를 어떻게 걸어 갈 생각을 했을까요. 진짜 여자가 말이야. 그래 그녀는 여자가 맞습니다.
      "니가 말한 전문대 앞이야. 어디로 가면 돼?"
      "벌써 왔어. 진짜 우리집 가깝다. 저 골목을 돌면 돼."
      그냥 똑바로 걸으면 빠를텐데 걸음걸이가 삐뚤삐뚤합니다. 그녀의 팔을 잡았지요. 어라. 우리과 그녀가 내 팔장을 끼네요.
      "내가 팔장 낀다고 싫어? 나도 여자야 이 사람아."
      "누가 뭐라 그래? 너 여자 맞어."
      "고마워 오빠."
      "또 오빠네."
      "어. 저기가 우리집이다. 잘가라."
      참 내. 기껏 여기까지 데려다 주었더니 '잘 가라.' 꼴랑 그 말만 남기고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초인종을 누르더니 집 안으로 사라집니다.
      "야. 이년아. 또 술 먹었냐? 한 동안 잠잠하더니... "
      집에도 년으로 불리는 걸 봐서 여자가 맞습니다. 다림이도 여자지요. 그녀도 그랬을까요. 내가 그녀를 찼습니다. 오늘 우리과 그녀의 태도는 어쩌면 다림이의 하소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웃음이 무엇이기에. 그 종이위에 비쳤던 과거의 그녀의 모습이 무엇이기에 그 동안 헤어졌던 어색함이 무엇이기에, 오늘 내가 그녀를 외면한단 말입니까.

      오늘 우리과 그녀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다림이도 울었을까요. 나란 존재와의 헤어짐이 슬퍼서 울었을까요. 괜히 내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담배 연기에 약하시나 봐요. 아까 내가 담배를 피웠거든요. 답답하시면 창 여세요."
      "네?"
      "눈물을 흘리시길래 혹시나 아까 내 담배 연기 때문에 그러는가 싶어서요. 문 열면 춥고 해서 그냥 피웠거든요."
      이 택시 기사는 분위기를 영 파악을 못 하는군요. 괜히 창을 열어 찬 바람을 느꼈습니다.
      상쾌하군요. 내일은 다림이를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여니까 훨씬 낫죠. 근데 좀 춥거든요. 이제 닫으세요."
      기사 새끼 진짜. 나이도 별로 안들어 보이는게 말이 졸라 많네.

      오늘 아침은 많이 떨립니다. 오늘 다림이에게 아는 척을 할 것입니다. 그녀가 답을 해주면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다시 만나자 그럴 겁니다. 다림이의 마음을 모르기에 떨립니다.

      오늘도 좀 일찍 갔었지요. 다림이는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항상 다른 나레이터 보다 훨신 일찍 나왔습니다. 내가 나오는 시각과 비슷한 시간입니다.
      전단지를 들고 나오며 다림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오늘 다짐한 것이 있기에 시선을 피하지 않고 씩 웃어 주었습니다. 다림이는 표정에 변화가 없군요. 그렇지만 나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습니다. 입을 꼼지락 거리는게 할 말이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만 그냥 밝은 표정으로 지나쳤습니다. 그녀는 옷을 갈아 입으러 이상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까 본 다림이가 내 사랑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군요. 다림이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데스크 밑에 전단지의 반을 넣었습니다. 나레이터 모델의 옷을 입은 그녀가 아름답네요. 나와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다소곳이 서 있습니다. 아직 문 열려면 시간이 꽤 남아 있습니다. 점심때가 좋겠네요.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 말입니다. 나는 밝은 표정으로 미소띤 얼굴을 그녀에게 주고 지나쳤습니다. 다림이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다소 쌀쌀한 어투였습니다.
      "놀리지 마세요."
      밝은 모습으로 웃음지어주면 그것은 놀린 겁니까? 세상이 그렇게 변한 것입니까. 그냥 다시 침묵으로 웃어주고 내 할 일을 하러 떠났습니다. 오늘 기분이 좋은 건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때문입니다. 오늘따라 전단지를 받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면하지 않네요. 전단지를 돌리며 어떻게 다림이에게 접근할까 생각을 해 봅니다. 아까 다림이가 말을 걸었을 때 그냥 대답을 해주고 아는 척 해버리는 건데 그랬습니다. 아침의 분위기는 아직 이르지요. 그리고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우우웅....""으으으..."
      "여보시오."
      "주원이 오빠야?"
      "어. 니가 어쩐 일이냐?"
      "어제 고맙다는 말 못해서... 내가 말 많이 했지?"
      "조금."
      "들어주어서 고마워."
      "기분은 어떻냐?"
      "괜찮아. 오빠는 뭐해?"
      "아르바이트 중이지."
      "언제 당구나 한 게임 멋지게 치자."
      "그래. 전화해 줘서 고맙다."
      "응. 안녕"
      우리과 그녀군요.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혹시 그녀가 날 좋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 맞다. 우리 과 전용 게시판에는 이런 게 붙어 있습니다.
      '공고. 92학번 주원이가 헨드폰을 샀다. 번호. ****-**** 내 헨드폰이 죽어가고 있어요. 불쌍한 선배 살려주는 셈 치고 전화해 주세요.'
      근데 쌔가 빠질 놈들이 그렇게 쪽팔리는 문구를 붙여 놓았는데도 전화 한 통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때 내 별명이 죽은 헨드폰. 심지어 내 헨드폰 번호를 별명으로 부르는 놈도 있습니다.
      헨드폰을 보고 씩 웃었습니다. 그래 헨드폰이 있었구나. 근데 그녀는갈아입고 나레이터 모델 그 옷을 입고 있습니다. 에이씨...
      전단지는 점심 먹을 시간 훨씬 전에 다 팔려 나갔습니다. 공짜가 좋긴 좋구나.

      짤래 짤래 빠른 걸음으로 전시회장으로 갔습니다. 정문 옆에 마주보며 서 있는 두 명의 모델 아가씨. 그 중에 한 명은 다림이입니다.
      "어서 오세요."
      인사 올리는 모습이 참 예쁘네요. 데스크가 놓인 곳은 그녀를 보기 참 좋은 장소이군요. 전단지를 깔고 앉았습니다. 관계자 놈들이 뭐라 그러든 괜찮습니다. 오늘 보고 있는 저 모습을 잊기가 너무 아까울 것 같습니다. 다림이는 나를 의식하는듯 인사를 마치고 나면 고개를 한 번씩 이쪽으로 돌렸습니다.
      혹시나해서 헨드폰을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다림이 번호를 눌렀지요. 그녀가 이쪽을 쳐다봅니다. 어떻게 지금 전화하고 있는 걸 알았을까요. 허허. 일을 하면서 헨드폰은 왜 끼고 있지요? 다림이가 허리춤 작은 주머니에서 헨드폰을 꺼내었습니다. 전화기를 꺼내었으면 받으면 되지 이쪽은 왜 쳐다보고 있습니까. 나를 쳐다 보던 얼굴은 맞은편 모델에게 뭐라 중얼거리기 위해 잠시 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는군요. 확 끊어 버릴까보다. 재밌네요. 빤히 쳐다보면서 전화하면 참 재밌을 것 같습니다. 그녀가 저쪽편 그러니까 바로 나를 보면 내가 있는 데스크에서 바로 정면쪽에 섰습니다.
      "여보세요."
      대답을 할까요. 말까요. 참 망설여지네요. 난 줄 알면 끊을 것도 같았지만 말을 했습니다.
      "여보시오."
      "말씀하세요."
      "어..."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네요."
      왜 짜증을 냅니까. 그렇게 오래 머뭇거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난데. 주원이..."
      "말씀하세요."
      난 줄 알면 고개를 돌려주면 좋을텐데 그러지 않네요. 뭐 나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오랜만이지?"
      "그렇네요."
      "딱 한가지만 물을게."
      "뭔데요."
      "저기 안 가봐도 되니?"
      "그게 묻고 싶은 한가지에요?"
      "아..아니."
      "괜찮아요."
      "그 있잖아. 나랑 헤어졌을 때 혹시 너도 눈물 흘렸냐?"
      "왜 그렇게 묻는데요?"
      "억울하잖아. 나같은 녀석한테 별말 못하고 차인 것 같은 느낌이 들거 아냐."
      "저 차인거 아니에요."
      "쩝. 그래. 그때는 진짜 미안했다."
      "뭘요?"
      "다른 것 제쳐두고 네가 그리울 줄은 모르고 짧은 생각으로 널 잊으려 했던거."
      "내가 그런 사진 찍었던게 그렇게 나빴던 거에요?"
      "그때는... 그때는 모르는 사내들의 웃음이 싫었어."
      "지금은요?"
      "원장 아줌마한테 들었어. 물론 벌써 그 전에 그 사진속의 넌 잊혀졌지만."
      "왜 전화 한거에요?"
      "가 봐야 돼냐?"
      "조금 더 얘기 할 수 있어요."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나 부자라고 했잖아. 하하."
      "무슨 얘기 하는 거에요?"
      "나한테 말했으면 네가 그 사진 찍으면서 받았던 돈 정도는 그냥 줄 수도 있었는데..."
      "돈 얘기 하려고 전화 한거에요?"
      "그건 아니지만 근데 왜 그리 쌀쌀하냐?"
      "오빠가 나에게 얼마나 쌀쌀했던 것은 모르죠."
      "미안해. 근데 말이야. 너 지금 유니폼 입은 모습이 너무 예쁘다. 패션 모델해도 되겠다."
      "팜플렛 돌리는 아르바이트는 왜 하는 거에요?"
      "그냥 문득 하고 싶어서. 널 만나고 싶었나 보지 뭐."
      "흠. 왜 전화했냐니까요?"
      "왜 자꾸 묻냐. 모른척 하기 힘들어서 했다."
      "그 동안 왜 장난으로도 전화 한 번 없었어요?"
      "그건 무슨 말이냐?"
      "그런게 있어요. 이 헨드폰 언제 찾아가실 거에요."
      "뭘 찾아가냐. 근데 왜 대답 안 해줘."
      "뭘요."
      "나랑 헤어졌을 때 눈물 흘렸었냐구?"
      "그건 왜 묻는데요."
      "그냥. 어떤 여자가 흘리는 눈물을 보았지. 참 아름답더라. 나 때문에 그 아름다운 눈물을 네가 흘렸다면 내가 그 여자에게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지른거 같아서..."
      "흘렸으면요."
      "빌려고. 아직 날 안 잊었다면 단지 빌려고. 그리고 널 알게된 지금까지 그때 며칠을 빼고는 계속 마음 속에 품고 사랑했었다는 것만 알려주려고."
      "날 계속 생각했던 거에요?"
      "계속 생각했었다고는 자신있게 말 못하겠어. 하지만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는 말할 수 있어."
      "흘렸어요. 아주 많이. 지금처럼요."
      "흘렸었구나. 미안하다. 근데 지금처럼이라니?"
      고개를 들어 보았습니다. 다림이가 나를 마주보고 있었네요. 언제 이쪽으로 얼굴을 돌렸을까요. 화장지워 지겠다. 진짜 울고 있었네요. 목소리는 별로 떨리지 않았었는데...
      "지금 우는 거냐?"
      "그래요. 너무나 기다렸었는데. 그래서 항상 들고 다녔었는데. 오늘 두 달만에 헨드폰이 울려서 그래서 따라 우는거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헨드폰이 운다고 따라 울다니 그녀는 매우 감성적인가 봅니다. 에이 씨.
      다림이에게로 갔습니다. 날 보는 눈이 젖어 있습니다.
      "이리 와."
      또박 몇 걸음 나에게로 다가오는 구두 발자국 소리. 예전의 기분 좋은 그 소리. 다림이를 안고 싶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녀의 가는 목을 잡고 살며시 내 품으로 안았습니다.
      뭘 봐. 이사람들아. 젊은 연인이 포옹할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래. 이 눈물은 나 때문에 흘리는 거여. 다른 사람이 보면 안되지. 그녀의 눈물은 내 가슴에서 닦여줘야된다 말이여.

      오늘 점심은 밥 안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녀와 다시 만난 것 같습니다. 배가 고플리 없지요. 오늘 저녁은 그녀와 저녁을 먹고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냉커피로 입가심을 할까요.
      다림이는 내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있습니다. 내 가슴이 지금 너무나 따뜻하거든요. 그걸 그녀가 느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남들이 뭐라 그래도 그녀는 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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